2017년 개최된 「제11회 노블엔진 대상」 수상작인 「완벽한 그녀에게 1% 부족한 건」(홍성혜 지음) [각주:1]은 2019년 오랜만에 혜성처럼 등장한 국산 라이트노벨입니다. 총 6권 구성으로 최근 트렌드인 이세계물도 아니며, 웹소설의 구성을 갖지 않고 보다 정통 라이트노벨에 가까운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꼭 국산 라이트 노벨이 아니더라도 반가운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1권의 서술자가 조금 독특합니다. 보통 이런 남성향 라이트 노벨의 서술자는 작가이거나, 남주인공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유신경[각주:2]이 아니라, 서혜인[각주:3]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독특함을 느끼면서 꽤 흥미롭게 읽었지만, 독자에 따라서는 꽤나 호불호를 느낄 수 있겠다 싶은 지점이었습니다. 그래도 2권까지는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다음 권부터는 시점도 변경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자세히 다루며 미향리의 다채로움을 자랑합니다. 각자 어떤 과거가, 현재가, 그리고 다가올 미래가 있는지 상상하고 살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마지막 권에 다다르면 마지막까지 변태 부장이라고 욕을 먹던 만년 미향리 부장님의 본명까지 알 수 있답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정보이셨을까요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되니 여기서 다루진 않도록 하고, 독후감 쓰기 싫어하는 제가 오랜만에 이 블로그에 들러서 글을 쓰게 된 까닭은 이 작가님의 후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작품 본편이 재미있는 러브 코미디인 것과는 별개로, 후기는 후기 나름대로 진지하면서,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즈음 고민해보았을, 마음에 와닿을 이야기를 해주셔서 인상이 강하게 남았습니다.

조금 유치하고, 때론 낯부끄럽고, 철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참 달콤해요.
전 그 망상의 반짝거림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 「완벽한 그녀에게 1% 부족한 건」 04권

어쩌면 처음부터, 혹은 긴 제목이 유행하기 시작했던 어느 날부터 라이트 노벨은 유치하고, 긴 문장형 제목을 가진 책이나 문장 그 자체를 대변하는 장르가 되어버렸다는 느낌을 어느 순간부터 받았습니다. 라이트 노벨을 사랑하고, 좋아해서 라이트 노벨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기운 빠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저는 작가님께서 남긴 4권의 저 글귀가, 설령 라이트 노벨이 부끄럽게 느껴지고 철없게 느껴지더라도 변함없이 처음 마음에 들었던 그 감상 그대로 가져갈 수 있기를 응원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물론 저도 그 망상의 반짝거림을 사랑하기에, 가끔 라이트 노벨의 아쉬운 면에, 몰락에 통탄하면서도 아직까지 독자로서 남아있는 것이지만요.

다만 상업 작가로서 상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는 한정적이니만큼,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각오로 썼습니다.


- 「
완벽한 그녀에게 1% 부족한 건」 06권

마지막 권에 놓인 후기를 보면, 2022년 현시점에서 보면 마지막인, 2017년 노블엔진 대상에 투고할 때 작가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예고되어 있었지만, 비단 러브 코미디 여부를 떠나 한국에서 상업 작품으로 라이트 노벨을 선보일 수 있는 실질적인 마지막 기회였다는 점에서 작가님께서 얼마나 애정을 들여서, 어떤 각오로 쓰셨는지 약간의 비장함이 읽힙니다. 그만큼 어려운 시장이고,  또 이제는 저물어가는 장르이니만큼 조금은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독자로서 한 권이라도 더 사드릴 걸, 하는 후회도 남기 마련입니다. 아직도 라이트 노벨을 붙잡고 있는 지망생으로서는 각오가 부족했구나 하는 깨달음을 느끼게 하는 문장이기도 했습니다.

끝이 났을 때 여러분의 책장 한편에 이 책이 꽂혀 있다면 저는 꿈을 이룬 행복한 작가가 될 거라 말씀드렸었는데…… 그 꿈을 이루었는지 모르겠습니다.

- 「완벽한 그녀에게 1% 부족한 건」 06권

비록 이 책을 전자책으로 읽어서 전자책 단말기의 책장이기는 하지만, 가끔은 생각나서 열어볼 것 같습니다. 라이트 노벨, 그중에서도 러브 코미디를 사랑하는 독자이자 누구보다 연애물을 사랑하는 글쓴이로서, 최근 읽은 라이트 노벨 중에서는 가장 편안하게 읽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까요. 이 작품이 이제야 등장한 점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하며, 한편 깔끔하게 끝난 결말에도 환영의 인사를 건넵니다.

  1. 당선 당시 「완벽한 그녀에게 1% 부족한 건 모에」라는 제목으로 당선 [본문으로]
  2. 남주인공 [본문으로]
  3. 여주인공 [본문으로]

 

 

진상규명을 약속했던, 다가오지 않을 것 같았던, 그러나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은 일곱 번째 4월 16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점차 흐려져가는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침을 먹을 적에 아침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침몰 소식, 선생님께서 전해주셨던 오보, 점심이 되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때의 심정, 그리고 며칠을 저녁마다 JTBC 뉴스룸에 의지해 마음 졸이며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붙잡고 있던 그때를. 그렇게 잔혹했던 2014년 4월을,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의 애원에도 차갑기만 했던 당시 대통령의 태도를.

2017년 세월호 인양이 이루어질 때, 이제는 끌어올린 배만큼이나 진실도 수면 위로 올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날의 희망은 여전히 가라앉아 떠오를 날만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해결되리라고 믿었던 180석의 의석 이후에도 세월호 앞에 같이 투쟁하는 국회의원은 얼마 없었음을 기억합니다. 진실 규명을 위해 다시 움직일 수 있을 거란 기대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국회를 기억합니다. 자신의 정치적 안위를 위해서 세월호를 이용하기만 한 검찰총장을 기억합니다. 올해 4월에도 세월호의 악몽 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3009함을 유가족 앞에 내어 온 해경을 기억합니다. 4년 전 약속했던 그 날이 다가와도 끝끝내 지키지 못한 대통령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비협조적이었고, 잔인했으며, 무관심했던 언론을 기억합니다.

세월호 유가족 분들께서 올해 1월 발간하신 사월의 약속을 읽어 보았습니다. 아직도 힘겨운 싸움을 하고 계시는 전국의 유가족 분들과 직접 도와주시는 분들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노력해주시는 분들께 항상 함께하지 못하고 드문드문 찾아오는 소식에만 의지했던 제 행동을 반성합니다.

약속의 기한을 넘겼다고 해서 미뤄지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깊은 바다 속에 잠긴 진실이 떠오르는 날까지 같이 기다리겠습니다. 때로는 할 수 있는 만큼 같이 행동하겠습니다.

2021년 4월 16일,
여덟번째 봄이 오기 전에 새벽이 끝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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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ember 2014.04.16

어느덧 세월호를 떠나보내고도 6번째 봄이 왔습니다.
차가운 바닷속에 가라앉아 묵묵히 손길을 기다리던 선체가 뭍으로 올라온지도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직도 2014년의 4월 16일,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를 보며 에어포켓에 희망을 걸었던 기억이 잊히지 않습니다. 철 없이 어린 중학교 1학년생이었던 제가 그 날 받은 충격은 대학교 1학년 생이 되어 오늘 집에서 자택 수업을 받는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게 다가옵니다. 여전히 후회스럽습니다. 매년 글을 쓰면서도 추모한답시고 작성한 내용이 유가족 분들께 상처를 드릴까봐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너무 가볍게 글을 쓰는 건 아닐까 매년 이맘때 즈음 고민스럽습니다.

올해 초, 세월호의 기록을 짧은 다큐멘터리 한 편에 담은 '부재의 기억'이 아카데미 상 단편 다큐멘터리 최종 후보에 선정되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아카데미 상 4관왕을 달성한 봉준호 감독님의 '기생충'에 다소 묻힌 감이 있습니다만,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신 이승준 감독님을 비롯해 세월호 유가족 분들께서 직접 참석하시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전 세계에 아픈 기억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기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특히 세월호의 의문을 풀 수 있는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이 순간에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로 어제, 대한민국은 국회의원 선거를 치뤘고 20대 국회가 저물게 되었습니다. 지난 20대 국회의 모 야당은 바닥에 드러눕고, 의원을 감금하고, 흉기를 들고 위협하는 행동을 보이며 법의 처리를 지연시키거나 언제나 방해해왔습니다. 이번 21대 국회는 아직 출범하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그 야당의 힘이 상당히 축소되어 세월호 수사에 방해될 만한 여건도 꽤 줄어들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선거는, 세월호에서 생존하셨던 학생 분들께서 처음으로 치룬 선거이기도 합니다. 안산 단원구에서 그동안 세월호를 모욕하고 방해해왔던 야당 국회의원을 자리에 앉히지 않고 여당 국회의원에게 표를 준 것은 그런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직 출범도 안 한 국회의원 분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이야기라 조심스럽기는 합니다만, 그 기대에 부응하는 국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청와대가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기록물을 열람할 수 있게 합심하여 진실을 밝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MBC에서 생중계한 세월호 6주기 기억식과 '부재의 기억 감독판'. 그 영상을 보고 저 또한 관심이 부족했음을 느낍니다. 특히 '부재의 기억'에서, 민간 잠수사 분들께서 사용하실 수밖에 없었던 장비들이 모두 썩어 사용하기 어려웠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2017년 416 가족협의회가 주최한 강의에서 들었던 내용 그 이상의 화가 나고 슬픈 이야기들이 뒷 배경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조금 힘겹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런 내용들을 하나씩 공유해가며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고, 싸워왔던 유가족 분들과 관련 단체의 모든 분들이 존경스럽습니다. 먼저 떠나가신 유가족 두 분의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저라면 계속해서 밀려드는 충격적이고 악랄한 현실에 버틸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마저도 듭니다.

좀 더 자유로운 신분이 된 지금, 그리고 앞으로. 세월호의 아픔을 계속 기억하고,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겠습니다. 이번 6주기를 넘어 10주기가 되어도, 진상 규명이 이뤄지는 그날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올해로 7번째, 304명의 희생자 분들과 5명의 미수습자 분들께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0년 4월 16일 오후 11시 49분
세월호 참사 6주기를 11분 남기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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